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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청에서 겪었던 이야기 5 윤주영 조회수 : 284
어느 날 시장이 집무실로 호출을 했습니다. 수첩을 단단히 옆에 끼고 들어섰더니 대뜸 하는 말씀. “감사관, 어디 숨어 있는 돈 좀 없을까?”
 
누구보다 청렴해야 할 시장이 돈 얘기를 꺼냈습니다. 과거의 불명예를 딛고 청렴도시로 올라서기 위한 분투들이 여기저기서 진행될 때인데 말입니다. 잠깐 당황을 했지만 이내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당시 부천시 예산은 1조원을 훌쩍 넘을 때였습니다만, 시 집행부의 재량으로 쓸 수 있는 소위 가용예산은 연간 몇 백억 원 수준에 그쳤습니다. 사회복지, 교통, 환경 등 필수분야에 돈의 용처가 이미 빠듯하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예산이 2조원을 돌파한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시민에게 위임받은 권한을 바탕으로 본인의 소신 내지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턱없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시장은 예산서에 숨어있는 돈을 찾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원래의 직업과도 직접 관련된 분야이기에 관심을 갖고 살피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낭비되거나 잘못 편성된 예산이 없는지가 그 시절 나의 주관심사였습니다.
 
지자체 예산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로 구분됩니다. 일반회계는 말 그대로 일반적인 행정 분야에 대한 것입니다. 별도의 구분을 지어 관리할 필요가 있는 분야인 상수도나 하수도, 공유재산 관리 등이 특별회계로 편성됩니다.
 
상수도 특별회계에서 개선점이 발견됐습니다. 수백억 원의 돈이 구체적인 계획이나 명분을 갖추지 못한 채 통장에서 잠자고 있었습니다.
 
금융기관 좋은 일만 시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반회계로의 반납이나 대여를 통해서 더 적절한 용처에 쓰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당연히 합법적인 대안이었습니다.
 
일정한 규모의 돈을 특별회계라는 그릇에 담아 별도로 지켜야 하는 이유도 분명히 있습니다. 단체장의 오판 등으로 지방재정에 균열이 생기고 이 때문에 상하수도 등 시민의 안위에 직결되는 분야에 위험이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별히 지켜야 할 이유가 객관적으로 부족하다면 다른 필요한 일에 과감히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재정의 효율적, 장기적 운용 관점에서 그게 옳습니다. 법적 근거도 충분합니다.
 
시장에게 보고를 하고 개선을 공론화 하려는 시점에, 의회에서 시의원의 시정질문이 제기됐습니다. 특별회계에서 일반회계로 자금을 움직이려는 시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습니다.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실상과 법규에 대한 판단이 빠진 원론적인 주장이었습니다. 타이밍도 기가 막혔습니다. 감사관실에서 검토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겁니다.
 
서로의 생각을 겨뤄보고 싶었습니다. 특별한 당장의 용처도 없이 그 많은 돈을 그렇게 묶어놓아야 할 이유에 대해 격하게 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지 못했습니다. 복잡한 다른 현안이 터지면서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미뤄놓고 끝내 더 살피지 못했습니다.
 
예산서는 보기만 해도 복잡합니다. 깨알 같은 숫자와 글자들이 어지럽게 박혀 있습니다. 관련된 법규도 만만치 않습니다. 회계사로 살아온 내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잘 살펴야 합니다. 단체장을 비롯한 결정권자도 이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으면 절대 안 됩니다. 경험과 식견이 있으면 더 좋습니다. 담당부서 공무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재정과 예산은 언제든지 낭패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단체장의 치적을 위한 단기적 운용, 관행에 따른 기계적 운용, 공무원의 복지부동, 이해관계자들의 정교한 숟가락 얹기 등이 아직도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숨어있는 돈을 찾아내기 원했던 시장은, 어렵사리 이뤄냈던 부가가치세 환급 100억 원에 많이 좋아하셨습니다.
 
저녁에 나를 따로 불러서 소고기를 사줬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보람 있고 유쾌했던 기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