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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청에서 겪었던 이야기 3 윤주영 조회수 : 363
불혹의 나이에 부천시청 감사부서의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공자께서는 세상일에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이 흐려지지 않는 나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출발부터 별로 그렇지 못했습니다.
 
스무 명이 훌쩍 넘는 부서 동료들의 나이에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단 두 명만 나보다 어리고 다른 분들은 꽤 형님, 누님들이었습니다. 열여섯 살 많은 팀장도 계셨습니다. 그간의 사회생활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맡겨진 업무도 만만치 않은데 동료들과의 시작은 무척 어색했습니다. 불혹은커녕 미혹됨이 잦아질까 불안했습니다. 출근하는 아침마다 결의를 다지곤 했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동료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성실하고 순수한 분들이었습니다. 출근 일주일 만에 몰래 써뒀던 사직서를 없애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같은 부서에서만 70여명 가까운 동료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임기를 마칠 무렵에는 나보다 어린 분들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택한 사직이었지만, 송별회 자리에서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정이 들었고 헤어짐이 많이 아쉬웠나 봅니다.
 
오랜 시간 겪었던 동료들과의 일상 속에서, 공직자들의 고충과 애환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도 해봤습니다. 알게 모르게 쌓여있는 공직사회의 불편한 진실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이야기들이 제법 있습니다.
 
불편한 진실 중의 하나와 관련해서, 가깝게 지냈던 간부 공무원이 들려주신 일화입니다. 퇴직 송별회에서 어느 분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우리 아버지는 이북에서 배를 타고 월남을 하셨어요. 아버지가 인천항에서 내리지 않고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정착을 했더라면, 내가 승진을 훨씬 빨리 했을 거예요”
 
불편한 진실의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 볼멘소리를 들어가며 애를 써봤습니다. 이렇고 저렇게 통계도 산출해보고, 인사를 담당하는 부서의 기록과 업무들을 점검하기도 했습니다.
 
공직사회에 회자되는 이야기들 속에는 오해도 편견도 있었습니다. 본인의 기대와는 다른 결과에 마음이 상한 분들의 넋두리가 부풀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으리라 기대합니다.
 
글을 맺으려는데 책장에 있는 사진첩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마지막 저녁 자리에서 동료들이 주신 선물입니다. 오랜만에 그들과의 추억들을 열어봐야겠습니다.
 
보고 싶은 분들이 여럿입니다.